일본 탁상 워게임 약사: 1972–2012

머리말

요즈음, 일본인이 디자인하고 일본에서 출판된 보드 워게임이 몇 가지 미국에서 영어판이 되어 재판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이 아닌 워게이머의 대부분은 일본의 워게임이 환경을 모를 것이다.
이 웹 페이지에서, 일본에서의 "취미의" 워게임의 약사를 소개하려고 시도한다―특히, 탁상 워게임에 관해서.
아마도, 지금 일본의 워게이머 인구는 미국 다음 간다 (장래는 중국인과 인도인에 추월당하지만). 그러나, 그 "여정"은 여러가지 점으로 미국과 다르다.
혹시 일본의 워게임이 미국의 워게임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는 것이라면, 그 요인은 그런 다른 여정에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단문이 일본의 워게임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 이외의 워게이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모형에서 종이에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본 사람이면, 일본 제국 해군이 미국 해군의 영향을 받고, 병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일본에서는 장교밖에 워게임을 몰랐다.
또한, 워게임의 "노병"이면, "Strategy & Tactics"는 1967년에 창간된 때, 발행인이 주일 미국 공군 기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일본에서 인쇄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일본인은 그런 잡지가 출판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일본인과 워게임이라는 취미의 첫 접촉은 1972년에 시작되었다.
비록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모델러는 대개 "타미야"와 모형잡지 "하비재팬"을 알고있을 것이다.
1972년 4월, "하비재팬"은 연재 "모델 솔저의 세계"에서 미니어처 워게임의 소개를 시작했다. 이 연재에서, "하비재팬"은 미니어처 워게임을 "영국의" 취미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어, 1972년 7월 9일, "하비재팬"은 일본 최초의 미니어처 워게임의 공개 실연을 동경에서 행했다. 이것이 일본에서의 워게임이라는 취미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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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2년 8월호의 기사 "일본에서 첫 워게임 공개전"

1973년, 일본 각지에서 미니어처 워게임 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1974년 8월, "하비재팬"은 드디어 보드 워게임―SPI가 발행하고 있던 "Strategy & Tactics"―을 소개했다.
그리고 1975년 6월, (주)하비재팬은 아발론 힐의 보드 워게임의 수입을 시작하고 일본어 룰북을 붙여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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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5년 4월호와 6월호의 아발론 힐의 보드 워게임의 광고

게다가, "하비재팬"은 "국지전에서 총력전에"라는 기사에서 아발론 힐의 보드 워게임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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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5년 6월호의 기사 "국지전에서 총력전에"

1975년 12월, "하비재팬"은 "전술에서 전략에"라는 기사에서 다시 아발론 힐의 보드 워게임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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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5년 12월호의 기사 "아발론 힐 워게임의 노는 법: 전술에서 전략에"

요컨대, 당시의 일본인 워게이머는 미니어처 워게임은 국지전의 전술 게임이며 보드 워게임은 총력전의 전략 게임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워게임은 처음에 "미니어처 게임"으로서 소개된에도 불구하고, 보드 워게임이 판매되자마자 미니어처 워게임은 쇠퇴하고 말았다.
미니어처 워게임은 일반적으로 보드 워게임보다 큰 공간이 필요하고, 일본의 토지는 작다. 그것은 이유이다―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콩의 토지는 일본보다 더 작은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워게이머는 미니어처 워게임도 보드 워게임도 플레이한다. 따라서, 공간의 문제는 증거로서 불충분한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서 당시 일본의 미니어처 시장이 생각할 수 있다.
그 무렵, 완제품의 미니어처는 일본에서 거의 팔리고 없었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인 모델러의 대부분은 청소년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워게임을 위해 많이 미니어처를 준비하는 것은 어려웠다.
현재, 일본에서는 "워해머"는 종종 플레이되고 있지만, 미니어처 워게임은 여전히 거의 플레이되지 않다. 이것은 일본의 워게임 환경의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진지한 패자와 "전쟁 게임"

또한, 일본의 워게임 환경은 그 밖에도 특징이 있다.
일본인은 진지하고 근면한다고 간주되고 있다. 그것은 그렇다고, 그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종종 게임을 진지함이나 근면함에 반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말을 모른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후 일본인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되었다. 요컨대, 전쟁과 군사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마치 호랑이 전쟁도 제 말 하면 오는 것 처럼. 따라서 군사적 요소가 포함되는 작품은 저속한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예컨대, 전시 중 전의 고양을 위해 많은 그림과 노래가 만들어졌지만, 그들은 전후 공공 장소뿐만 아니라 회화사와 가요사에서도 말소되었다.
그리고, 전시 중 "성전"을 부추긴 교사들과 매스 미디어 기자들은, 특히 아이들이 군사적인 일에 흥미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마치 자신의 과거의 소행을 은폐하는 것 처럼.
요컨대, 일본에서는 적지 않은 어른들이, 처음 소개된 때부터 워게임을 진지하지 않고, 저속하고, 아이들에게 유해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사실, "하비재팬"이 상술한 첫 워게임 공개전을 행한 때, 매스 미디어는 기자들을 보내고, 보도 후 워게임의 시비를 논했다.
지금도, 자신의 취미를 숨기는 일본인 워게임머는 있다. 이것도 일본의 워게임 환경의 하나의 특징일 것이다.

수입 시대

1970년대, 일본인 워게이머는 "수입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하비재팬과 기타 회사는 아발론 힐의 워게임을 수입하고 있었다. SPI의 워게임은 당시 상자에 들어 없고, 수송 도중에 파손될 리스크이 높았기 때문에, 일부 소매점만이 수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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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의 아발론 힐의 광고 (1976–1978)

1977년 4월, "하비재팬"은 "아발론 힐 바리에이션"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1977년 9월에 제목을 "아발론 힐 게임을 즐기자"로 변경). 이 연재는 동경의 워게임 클럽 "카데 (Cadet) 클럽"의 회원들이 쓰고 있고, "Tactics II", "Wooden Ships & Iron Men", "PanzerBlitz", "Panzer Leader"등의 게임을 소개하거나, 그들이 자작한 선택 툴가 공표되거나, PBM (우편 대전)이나 솔리테어 플레이가 소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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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7년 4월호의 "아발론 힐 바리에이션: Tactics II 개조 계획"

1977년 8월, "아발론 힐 게임을 즐기자"는 제목을 "워게임의 세계"로 변경했다. "워게임의 세계"는 워게임과 아발론 힐의 역사를 소개하거나, 아발론 힐의 게임과 카데 클럽의 최신 정보를 발표하거나, 룰의 질문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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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8년 8월호의 "워게임의 세계: 이것이 워게임의 세계다!"

1980년 8월, (주)하비재팬은 SPI의 박스 워게임의 수입을 결정하고, "하비재팬"의 기사 "SPI 등장!"로 SPI를 소개했다.
"SPI 드디어 등장", "루츠는 일본!", "SPI는 AH의 호적수", "프로그레시브한 SPI", "이상의 극한으로!"―기사는 그런 말과 "Bulge", "Leningrad", "Operation Typhoon", "Paratroop", "Battles for the Ardennes", "The China War", "Fulda Gap"라고 하는 게임으로 SPI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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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80년 8월호의 "SPI 등장!―지금, 뉴욕에서 새로운 폭풍!"

그리고 1980년 9월, 하비재팬은 SPI의 박스 워게임의 수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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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의 SPI의 광고 (1980년 9월–1981년 9월)

국산 게임과 잡지

1970년대, 많은 일본인 워게이머가 자작 워게임의 디자인에 도전했다. 그리고 1980년, 한 사건이 국산 워게임의 출판을 촉진했다―하비재팬이 수입 워게임의 가격을 올렸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일본 엔의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은 고정 환율이며, 1달러는 360엔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닉슨 쇼크에 의해 변동 환율으로 바뀌고, 일본 엔은 서서히 올랐다. 1978년, 일본 엔의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은 180엔에 달했다.
하비재팬은 원래, 구미의 최신 하비를 일본인에게 소개하기 위해 설립되고, 강해지는 엔과 함께 수입 비즈니스를 확대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환율은 달러 강세로 돌아서, 일본 엔의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은 1980년에 250엔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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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79년의 아발론 힐의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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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재팬" 1980년의 아발론 힐의 광고
"D-Day", "Waterloo", "Stalingrad", "Afrika Korps", "Midway", "The Battle of the Bulge", "Blitzkrieg"의 가격이 4800엔에서 5800엔에 올랐다.

일본에서 더 워게임을 보급시키기 위해서는 수입 게임보다 싼 국산 게임을 출판해야한다―그리고 1981년, 일본의 세 가지 주요 완구 회사, 반다이 츠쿠다하비 그리고 에폭사가 잇달아 국산 워게임을 출판했다.
반다이는 이미 "선더버드"나 "우주전함 야마토", "울트라 시리즈" 등의 완구로 유명했다. 츠쿠다하비는 오델로의 판매로 유명했던 츠쿠다의 자회사이며, 또 하나의 자회사인 츠쿠다오리지널은 루빅스 큐브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폭사은 야구판의 메이커로서 유명했다.
국산 게임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그러나, 이들 세 회사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점과 단점은 각각의 첫 번째 작품에 반영되고 있었다.
반다이는 자본이 가장 크고, 컴포넌트가 아름답고 화려했다. 말을 세우는 플라스틱 스탠드나 말을 움직이는 미니 갈퀴가 들어있어, 전투는 카드로 해결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이 기존의 워게임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게임 자체는 만듦새가 나빴다. 사실, 반다이 첫 번째 워게임 "연합함대"는 태평양 전쟁의 전략급 워게임이었지만, 해군 함정 유닛이 통제 구역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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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의 "연합함대" 광고

츠쿠다하비의 첫 번째 워게임은 "기동전사 건담"의 세계에서의 전술급 육전 게임 "Jabro"이었다. 이 게임은 대학생의 워게이머가 디자인한 자작 게임을 기반으로 하여, 기본적인 시스템은 "Squad Leader"를 기반으로 했다. 첫 번째 워게임이 애니 베이스의 전술급 워게임이며, 중심적인 디자이너 오카다 아쓰토시가 미니어처 워게임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 후 츠쿠다하비는 주로 애니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술급 워게임을 출판했다. 애니도 제2차 세계 대전도 인기 테마이기 때문에, 츠쿠다하비는 연거푸 많은 워게임을 출판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제 남조를 발생시키고, 적지 않은 게임이 낮은 플레이어빌리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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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다하비의 "Jabro" 광고

에폭사은 디자인을 외부 팀, Rec Co.에 위탁했다. Rec Co.는 두 사람 워게임 애호가, 스즈키 긴이치로구로다 유키히로에 의해 설립되어, 그 이름은 정찰중대 (reconnaissance company)에서 유래했다. Rec Co.에서는 많은 플레이 테스터가 있고, 모두 워게임 팬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플레이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에폭사은 네 개의 게임, "독소 전격전", "일러전쟁", "사막의 여우", "벌지 대작전"을 동시에 출판하여, 그들을 "월드 워게임 시리즈"로 명명했다. 어느 게임도 높은 플레이어빌리티이며, 게임 밸런스도 좋았다. 그러나, Rec Co.는 그래픽 디자인에 무관심이며, 에폭사도 그래픽 디자인에 충분한 돈을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키지도 컴포넌트도 ("벌지 대작전"을 제외하고) 반다이나 츠쿠다하비에 비해 손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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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폭사의 "월드 워게임 시리즈" 광고
에폭사은 당초, 풀 컬러 광고를 만들지 않았다.

1982년 1월, 하비재팬은 확대하는 워게임 시장에 응하고, 격월간의 워게임 잡지 "Tactics"의 발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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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창간호의 표지

그리고 1982년 7월, 하비재팬도 국산 워게임 "전차전"과 "대일본 제국해군"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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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제4호 (1982년 7월)의 "전차전"과 "대일본 제국해군" 광고

국산 워게임은 잘 팔렸다. 특히 반다이의 "연합함대"와 에폭사의 "일본기동부대"는 30000개 팔렸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SPI의 히스토리컬 워게임을 플레이했던 하드코어한 워게이머에서는 그들을 과소 평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반다이의 플라스틱 가제트가 붙은 게임이나 츠쿠다하비의 애니 게임이나 에폭사의 빈약한 외형의 게임을 새끼의 장난감으로 간주했다.

확대하는 전선

1982년 7월, 하비재팬, 에폭사, 츠쿠다하비는 워게임 컨벤션 "TAC-CON"의 공동개최를 시작했다. "TAC-CON"은 일본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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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제4호 (1982년 7월)의 첫 "TAC-CON"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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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제6호 (1982년 11월)의 "TAC-CON" (동경, 오사카, 요코하마) 리포트

1982년 8월, 하비재팬은 GDW의 게임의 수입을 시작했다.
1982년 9월, 새로운 격월간의 워게임 잡지 "Simulator"가 발행되었다. "Simulator"는 원래, 동경의 워게임 클럽 "퍼스트 디비전"의 회보로서 출판되었지만, 실질적으로 Rec Co.가 편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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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ulator"의 표지

1982년 11월, 하비재팬은 Jim Dunnigan의 "The Complete Wargames Handbook"의 일본어판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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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tics" 제7호 (1983년 1월)의 "The Complete Wargames Handbook" 일본어판 광고

1983년, 에폭사는 새로운 워게임 시리즈 "에폭 워게임 일렉트로닉스 (EWE)"의 판매를 시작했다. EWE의 게임은 Rec Co.가 아니라 에폭사의 직원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EWE의 게임은 미니 게임이며, 자석의 말과 철제 보드, IC로 무작위로 결정되는 전자 주사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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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WE의 광고

1983년 6월, 츠쿠다하비는 계간의 공식 서포트 잡지 "Operation"의 발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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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의 표지

1983년 9월, 하비재팬은 Victory Games의 게임의 수입을 시작했다.
1983년 10월, 애드 테크노스가 새롭게 워게임 출판에 참여했다. 원래, 애드 테크노스는 광고회사이며, 반다이의 광고 제작을 하청하고 있었다. 애드 테크노스에서 워게임을 알고있는 직원이 있었기 때문에, 반다이의 워게임 디자인도 하청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애드 테크노스는 독자적으로 자체 워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북스 (SGB)" 시리즈의 출판을 시작했다. SGB시리즈는 서적 형태의 워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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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B 제1작 "아르덴의 안개"

1980년대 초반, 일본의 탁상 워게임 시장은 급속히 확대했다. 그렇지만, 그 붐은 미국에서의 붐에 비해, 너무 느리고 너무 짧았다.
1982년, SPI가 파산. 1983년, 닌텐도가 패미컴을 발표. 그리고 1984년, 두 사건이 일본의 탁상 워게임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계속...


Last-modified: Wed 11-May-2016 04:01:20 PM +0900 JST (347d)